이문구의 <관촌수필>
1970년대 변화하는 농촌의 모습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산업화과정에서 공업 우선 정책에 의해 희생된 것은 농업부문과 농촌과 농민이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농촌 중심의 공동체적 사회 구조가 무너지고,여러 가지 농촌 문제들이 생겨났다. 도시와 농촌 사이의 발전 격차가 커짐에 따라 일상적인 생활이나 문화 수준에서 농촌은 도시에 비해 뒤떨어져 갔다. 이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옮겨가 농촌 인구 중 노인이나 부녀자의 비율이 점차 높아졌다. 교육이나 혼인 등의 문제도 농촌 사회가 당면한 과제였다. 농촌 문제가 커져 가자 역대 정부는 농촌을 도시와 함께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4H운동이나 새마을 운동도 그 일환이었다. 1970년대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을 바탕으로 한 지역 사회 개발 운동으로 진행되었다. 새마을 운동은 처음에 농촌의 소득 증대 사업으로 시작되어 점차 도시로 확대되었으며 전국적인 의식 개혁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주택 개량, 농지 정리, 하천 정비 등 농촌의 생활 환경이 개선되고, 소득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 왔다. 그러나 도시로 떠나지 않고 농촌에 남아 있는 농민들은 과거의 공동체적인 삶의 미덕을 상실하였다. 이러한 농민들의 문제가 70년대 사회적 관심사로 제기되면서 문학의 경우에도 농촌소설 또는 농민문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적지 않은 창작적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문구의 작품에서는 농촌의 황폐화현상을 안타까움이 섞인 비판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데, 각종 공해로 인한 자연환경의 오염과 농촌경제의 궁핍화 현상, 인간관계의 단절과 불신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농촌의 내적 붕괴를 말해 주는 것이다.
능동적 읽기를 위한 생각하기 질문
서술자가 떠올리는 할아버지의 말씀과 관련지어 할아버지는 어떤 인물인지 정리해보자.
-진정한 설은 음력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양력설은 상것들이나 왜놈들만 쇤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유교적 관념이 남아 있으며 전통을 고수하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② 서술자가 떠올리는 고향의 모습에 대해 정리해보고, 할아버지의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자.
-고색창연한 이조인인 할아버지의 유일한 육친으로 생각하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의 조각들을 모든 것의 으뜸으로 생각한다. 고향이 곧 할아버지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삶의 뿌리이자 전통이 곧 고향의 모습이다. 할아버지의 흔적이 사라졌다는 것은 산업화로 인해 고향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③ 왕소나무를 통해 드러나는 서술자의 감정을 정리해 보자.
- 서술자는 왕소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보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고조되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왕소나무는 유명한 기인 토정 선생의 지팡이가 변해서 된 것이며 이 지팡이 앞에 철마가 뜨면 한산 이씨 자손들이 이 고장에서 뜨리라고 하셨다는 할아버지의 말로 미루어 보아 과거에 대한 향수, 산업화로 인해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감이 드러나 있다. 왕소나무가 사라진 것은 전통적인 삶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화자는 오장에서 부레가 끓어오를 정도로 울분을 느낀다.
④ 옹점이는 어떤 인물인지 정리해보자.
-동네에 떠들어온 비렁뱅이와 동냥중, 나병환자, 집안의 머슴들에게까지 인정을 베풀던 마음씨가 착하고 너그럽고 동정심이 많은 아이. 어른 앞에서는 소견이 넓었고 아이들에게는 남달리 인정이 많고, 그릇을 잘 깨는 덜렁쇠에 참새 같은 수다쟁이였는데 옹점이라는 이름은 태어난 곳이 옹기틀목이라는 이유로 할아버지께서 즉흥적으로 작명해 준 것이다.
⑤ 내가 중학교에 진학해서까지도 변변한 친구 하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안팎 동네 사람들의 반 이상이 행랑이나 아전붙이였기 때문에 하대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지론에 따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고 아이들도 저희들의 부모가 어려워하는 것처럼 할아버지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께서 문벌을 찾아 격차를 두고 층하를 두어 행세했던 영향으로, 전쟁을 겪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관습처럼 아이들에게 영향이 남아 여전히 친구가 없었고 ‘나’도 세태에 순응하는 것이 안전한 처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⑥ 할아버지의 유언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 몰락한 집안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에 논문서나 집문서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었다.
⑦ 친구들과 함께 글을 배울 때의 모습을 통해 할아버지의 성격을 유추해 보자.
- 손자에 대한 사랑이 깊고, 아이들이 심하게 장난을 쳐도 매를 때리지 않는 자상한 면이 있다. 글을 가르치는 것은 할아버지에게 소일거리였으며 동시에 보람이었다.
⑧ 아버지의 성격을 정리해 보자.
- 무던히도 대범하며 할아버지처럼 가리고 찾는 것이 없었다. 할아버지보다 더 완고한 구석이 있었으며 할아버지에게는 부족한 포용력과 도량이 넉넉한 사람이었다. 집안에서는 늘 과묵했으나 서술자인 나를 엄격하게 훈육하였다.
⑨ 마지막 해가 지는 배경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 지는 해는 사라져 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고향의 모습, 사라져 가는 공동체적인 삶과 전통을 상징한다.
등장인물
할아버지 : 명문 가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삶의 품격을 중시하며 사대부 선비로서의 긍지가 대단한 인물. 봉건적이고 보수적이나 따뜻한 면모도 지니고 있음.
아버지 :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진보적인 인물. 할아버지보다 더 완고하였는데 특히 자식들에 대해 냉엄하게 훈육함. 도량과 포용력이 있음.
나: 서술자.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옛 시절을 회상하는 인물.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버지를 무서워함. 무슨 일에 나서기를 싫어함.
옹점이: ‘나’의 집안 일을 돌보아 주던 여자 아이. 할아버지가 작명(作名)함. 조심성이 부족하지만 인정이 많음.
구성
- 도입부에서 양력 정초에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주인공은 사라진 왕소나무와 퇴락한 고향집의 모습을 보고 실향민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덜 수가 없다. 이후 공간의 이동에 따라 떠오르는 작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가가 경험한 에피소드가 후일담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술자가 보고 들은 이야기나 감정을 삽화 나열과 이야기 끼워넣기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관촌수필 전체 줄거리
제1편 [일락서산(日落西山)]
옛모습을 찾을 길 없는 고향을 찾아간 ‘나’의 어린 시절 회상
제2편 [화무십일(花無十日)]
전쟁 증 만난 피난민 일가인 윤영감 일가에 대한 어머니의 따뜻한 인간애.
제3편 [행운유수(行雲流水)]
성장기에 함께 했던 옹점이의 결혼 생활과 인생 유전
제4편 [녹수청산(綠水靑山)] 이웃인 대복이과 그 가족에 얽힌 이야기
제5편 [공산토월(空山吐月)]
성실하게 살다가 비극적으로 요절한 토속적인 석공 신씨에 대한 연민과 사랑.
제6편 [관산추정(冠山秋情)]
전통적인 마을 안을 흐르는 '한내(大川)'가 도시 문명으로 파괴되는 모습.
제7편 [여요주서(麗謠註書)]
중학 동창인 친구가 아버지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꿩을 잡아 팔려다가 들켜 시달리는 이야기.
제8편 [월곡후야(月谷後夜)]
벽촌 소녀가 겁탈당한 사건을 둘러싸고 동네 청년들이 범인을 어떻게 제재하는가를 다룬 이야기.
이해와 감상
<관촌수필>은 1972년의 <일락서산>을 시작으로 전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이 작품은 자신의 유년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산업화에 따라 변화된 현실과 그로 인해 잃어버리게 된 농촌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 주고 있다. 1-5편은 어린 시절의 체험담, 6편은 고향을 떠난 후 다신 만난 고향 친구 이야기, 7-8편은 귀향 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일락서산>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사대부 출신이라는 자긍심을 가진 할아버지와 사회주의 사상의 진보적 인물인 아버지, 어린 시절 집안을 돌보던 옹점이를 담담하게 회상하고 있다.
과거의 고향과 현재의 고향을 비교하며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에 대한 비애와 어린 시절의 고향 풍경을 향수하고 있는데, 농촌의 황폐화와 인간 소외, 갈등의 문제를 따뜻한 인간애와 결부시키면서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통적인 구어체, 풍자와 해학,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옛 어휘의 사용, 만연체의 문장, 충청남도 보령 지방의 사투리를 살린 토속어의 사용 등은 작가 특유의 문체상 특징이다. 이러한 문체는 특히 잃어버린 어휘와 속담, 격언을 풍부하게 살려 쓴 것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을 향수하는 내용과 조응되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점차 상실되어 가는 전통적 삶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고향의 복고적 취향이나 전통적 인간의 삶의 이면에 초점을 맞추어 그러한 변화의 구체적 정체와 변화 속에서 겪는 인간적 갈등, 변모된 현실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농촌의 급작스런 변모에 따라 전통적인 질서가 와해되어 가는 과정을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전반부의 이야기(1-5편)와 변해 버린 농촌에 대한 비판(6-8편)을 담은 후반의 이야기는 진정한 인간성과 농촌의 공동체적 질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며, 삽화를 나열하며 그 사이에 이야기를 끼워 넣은 열린 구성 방식과 이야기체 형식인 전통적 전개 방식 그리고 전통적인 구어체의 복원과 구수한 방언의 사용은 70년대의 소설과는 다른 <관촌수필>만의 문학적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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