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어 개념 노트/개념어 정리

과학 기술 철학-인간과 기술의 관계

by 다연아빠 2022. 4. 22.

과학 기술 철학-인간과 기술의 관계

과학기술에 대한 이론적 입장은 기술의 중립성 여부, 인간과 기술의 관계, 기술의 합목적성 등의 관점에 따라 크게 기술결정론, 도구주의, 사회결정론으로 구분된다.

 

1. 기술결정론

필자가 수업을 하면서 이 과학기술의 입장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서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수능특강 지문에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다루었는데 먼저 프랑스 학자 자크 엘륄에 대한 지문 일부를 한번 살펴 보겠다.

(가) 프랑스의 학자 자크 엘륄은 현대 기술은 과거의 기술과 전혀 다른 특징들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우선 전통 기술은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적 활동 등 인간의 다른 활동들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는데, 현대는 기술의 발전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되었다. 엄청난 발전 속도, 지역의 문화와 상관없이 전 지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보편성, 여러 기술이 거미줄처럼 엮여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이루는 것 등이 현대 기술의 중요한 특징이다.
엘륄은 기술을 발전시키고 사용해 온 인간이 더 이상 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을 자유도, 사용하지 않을 자유도 없게 된 상황을 “현대 기술은 이제 자율적인 것이 되었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때 기술이 자율적이라는 것은 자동차가 운전자 없이 혼자 돌아다니거나 기계가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 발전이 기술 시스템의 관성에 의해 지속되고, 그 과정에 인간의 결정은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기술 사회를 이끌어 가는 거대한 기술 시스템은 인간들에 의해 조정되기보다는 ‘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만을 추구하는 경제적 효율성 추구의 관점에 따라 운영되고 발전한다. 인간의 가치나 필요는 효율성의 논리 앞에 무력하다.
엘륄은 현대 기술 사회의 문제로 컴퓨터와 휴대 전화 등 기계들을 사용해야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 기술의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의 삶이 이미 기술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점을 꼽는다. 그런데 엘륄은 더 심각한 문제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이 기술에 종속되어 가고 있는 것을 삶이 더 나아지는 과정, 더 인간적이 되어 가는 과정으로 느낀다는 데 있다고 본다. 또한 그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크 엘륄의 관점에서 과거의 기술과 현대의 기술의 지위가 다르며 기술은 '자율적'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기술결정론에 가까운 주장이다. 기술 자체가 갖는 내적 필연성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에 따라 개인은 물론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기술이 자율적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함의한다. 과거에는 인간이 인간 목적을 위한 도구로서 기술을 사용했다면, 이제는 기술이 자율성과 독자성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기술의 내적필연성에 의해 자율적으로 발전하는가?

 

2. 도구주의

다음은 도구주의와 관련된 지문 내용 일부이다.

(나) 기술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인간은 의지를 가진 살아 있는 주체이고 기술은 자체 생명력이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자신의 뜻에 따라서 기술을 바꾸고 목적을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하이데거가 간파했듯이 어떤 기술은 인간을 옥죄고 지배한다. 미국의 기술 철학자인 랭던 위너는 이렇게 자체 생명력을 가진 기술을 ‘자율적 기술’이라고 명명했다.
이렇게 기술 철학에서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모두 지배와 통제의 관계로 설명해 왔다. 즉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도구적’ 관점이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기술을 사용하든가, 기술이 인간을 도구화하든가 하는 양자택일이다.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지배·통제의 관점에서 해석된 이유 중 하나는 서양 철학의 오래된 주체·객체의 구분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이라는 주체는 특정 목적을 위해 기술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자연과 세상을 통제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를 거꾸로 돌렸을 때, 기술이 인간을 통제하고 옥죈다는 생각이 나왔다. 그렇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는 지배와 통제의 관계를 넘어선 수 많은 복잡한 유형의 관계가 존재한다.

 도구주의는 기술을 인간 목적을 위한 도구나 수간으로 보는 관점을 말한다. 이때 '기술 그 자체는 중립적'이라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목적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도구주의 관점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기술이 원래의 목적에 따라 사용되는지'이다. 원래 목적에 따라 사용되지 않고 개인의 이익이나 특정 집단의 이해를 위해 악용된다면 기술은 통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도구주의는 공리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기술의 발전과 방향을 인간의 통제와 지배 속에 두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위 인용글 마지막 문장에서 흥미로운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주체와 객체의 지배, 통제 관계로 보지 않는 새로운 관점이다. 지문을 살펴 보겠다.

(다) 기술을 인간의 목적으로 혹은 인간을 기술의 목적으로 국한하는 관점을 처음으로 탈피한 철학자는 프랑스의 질베르 시몽동이다. 그는 기술이 실용적인 목적으로 환원되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기술의 특성이 ‘집합체’라는 점에 있다고 보았다. 기술이 집합체라는 말은 기술이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술은 항상 그것이 수행하는 일, 그것을 만든 이유와 함께 존재한다. 또 이러한 기술은 이동 가능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데, 기술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확장되고,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의 새 관계를 만들어 낸다. 간단히 말해서 기술의 본질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이 인간과 다른 대상, 즉 주체와 객체의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는 관점으로 서구 철학의 이분법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학자인 브루노 라투르는 이러한 관점을 더 발전시켰다. 그는 기술이 사회적 필요에 따라서 마음대로 바뀔 수 있다고 보는 입장과 기술이 자율성을 가지고 인간을 지배한다고 보는 입장을 모두 비판한다. 전자는 기술이 사회적 필요에 따라서 구성된다는 사회 구성주의적 입장이고, 후자는 기술이 인간의 필요와 행동을 결정한다는 기술 결정론적인 입장으로, 라투르는 이 두 입장의 중간을 취하지 않고 기술을 이해하는 훨씬 더 급진적 시각을 제공한다. 그것은 기술과 같은 비인간을 인간과 같은 행위자(actor)로 보는 것이다. 그는 인간 사회가 기술 없이는 구성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으며,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건, 기술, 무생물 등과 같은 비인간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는 우리가 현대 기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지배·통제라는 틀에서 인식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질베르 시몽동과 브루노 라투르공통적인 관점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지배, 통제라는 틀에서 인식하는 태도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질베르 시몽동은 기술의 본질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주체, 객체의 관점을 탈피했고, 브루노 라투르는 좀 더 급진적 시각에서 기술을 인간과 같은 행위자로서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한다. 현대 기술에 있어서 기술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고 나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지향점을 시사해준다.

 

3. 사회결정론

 사회결정론은 기술결정론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했다. 기술 그 자체의 내적 필연성과 자율성에 따라 발전한다는 생각은 기술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를 간과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요소는 사회 구성원의 요구, 선택, 상호작용 등이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사회결정론은 기술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 관심을 갖는 사회구성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댓글